헤겔은 소-변증법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소-변증법은 헤겔의 논리학에 대한 짧은 견해속에서 발견되는 그의 동적인 사상의 면모를 본인이 편의상 지칭하기위해 만들었다. 소-변증법은 (1)부정의 계기, (2) 부정속에서 발견되는 긍정, (3) 그리고 사변(spekulativ)의 계기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이 사용하는 오성(verstand)와 이성(Vernunft)의 차이가 선행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급된 내용을 이해했을 때 헤겔의 유명한 명제인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1. 오성과 이성의 차이
이성과 오성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독일어 뜻을 살펴보면 의미는 명확해진다. verstand는 독일어 verstehen 이해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상되었으며, vernunft는 경청하다의 의미를 가진 vernehmen에서 파생되었다. 헤겔의 철학체계에서 Vernunft는 Verstand보다 상위적인 계념을 체계를 지시한다. 그리고 두 용어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면 헤겔 철학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오성이(Verstand) 개별적인 것에서 특수성을 밝혀내어 세계로부터 개체를 분리시키는 능력을 지시하는 반면, 이성은(Vernunft) 개체성속에 내재하는 특수성을 훼손하지 않을채 전체로 다시 편입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오성이 개체1, 개체2, 개체3...개체n으로 독립적인 요소로 세상으로 부터 분리하고, 이성은 분리된 각각의 개체를 연결해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 즉 서로 관련한 개체들 사이에 연관성을 부여한다..오성은 꽃, 나무, 씨앗, 열매를 모든 개체들을 포함하는 세계속에서 따로 분리한다. 이때 꽃, 나무, 씨앗, 열매는 서로 다른 외연을 지니면서 세계라는 추상성에 자신만의 경계를 획득한다. 오성은 그러므로 분할하는 능력을 뜻한다. 반면 이성은 이 분할된 넷 사이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원리를 의미한다. 나무에 있는 꽃이지면 열매를 맺고, 죽은 열매가 씨앗을 낳아 싹을 잉태하는 개체성들이 이성안에서 모여 펼쳐지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래서 헤겔의 이성은 인간을 숫자로 환원 파악하는 싸늘한 분석의 정신이 아니다. 도구적 이성은 오성의 악용에 가깝지 헤겔의 진정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이성자체가 아니다. 되려 싸늘한 오성의 분석에 이야기를 삽입하는 것이 이성이다.
여담이지만 김덕영 선생의 사회와 사회적인 것의 분할이 사회에 대한 적대적인 해석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생겼다. 사회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회학은 니체의 후예다
2. 소-변증법
2-1) 오성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오성은 12개의 범주 판단으로 소급할 수 있으며, 오성은 12개 범주의 개념으로 인식잡다(혹은 현상)에 논리적인 질서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주석a 이하 알파벳). 오성은 각지를 통해 수용된 표상과 실재 대상의 지시를 돕고, 개념을 형성한다. 헤겔의 경우에도 칸트와 같이 오성의 기능은 비슷하지만, 이성의 경우에 헤겔은 칸트와는 의견을 달리한다.
"논리적인 것은 형식상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1) 추상적 또는 오성적 측면, 2) 변증법적 또는 부정적-이성적 측면, 3) 사변적 또는 긍정적-이성적 측면" (E §79).
"오성은 다만 규정하면서 바로 이 규정을 고수하는 데 반해서, 이성은 이러한 오성의 재규정을 무(無)로 해소시키는 까닭에 모름지기 부정적이고 변증법적이며, 더 나아가서 이성은 긍정적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편을 산출하면서 그 안에 있는 특수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대논리학 I, 23/ L I, 16)
오성적 사유를 통해서 보편이란 추상성속에 용해되어 있는 개체성들은 규정을 획득한다. 그리고 오성을 통해 규정된 개체성들은 서로서로 구별되고 고립되어 있다. 나는 너와 무관하게 나이고, 너는 나와 무관하게 너이고, 그것은 다른 어떤것과 무관하게 그것이다. 아무란 구별없이 무작위하게 뒤엉켜 있는 세계라는 보편은 이제 규정으로 획득함으로서 지어 나, 너, 그것 그리고 아직 오성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세계로 특수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런 연관성 없이 특수한 규정들은 고립되어있다.
2-2) 부정적 이성
이성은 오성으로 인해 꽃, 열매, 씨앗으로 고립된 개체성들을 운동을 삽입한다. 오성으로 인해 고립된 개체성 속에서 모순을 불합리를 드러내는 기능을 변증법 혹은 사유의 부정적-이성적 측면이라고 부른다. 이성은 고정된 존재의 경계를 허물어 생성과 변화의 흐름속에서 파악한다. 꽃과 씨앗은 서로의 연관성을 획득하여 "씨앗이 지고 꽃이피고, 꽃이지면서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썩고서야 씨앗이 열린다"는 생명의 흐름인 전체를 이성은 관조한다. 특히 여기서는 부정적 이성을 뜻하므로 각 개체성들은 무無로 돌아가는 생명의 흐름속에 있다.
"이성의 투쟁은 오성이 고착시킨 것을 극복하는데 있다." (E § 32)
주의해야 할것은 이성이 외부에서 오성을 향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으로 인해 구별된 개체들 속에서 모순이 발견되어 내재적으로 초탈하는 것이다. 꽃과 씨앗이 단순히 그것은 종으로서의 구별한 식물사전에서는 씨앗이 꽃이되는 과정과, 꽃이 씨앗이 되는 과정을 포함할 수 없다. 식물사전은 오로지 어떤 꽃의 질을 정확하게 표현한 오성의 산물일뿐, 개체성들 사이의 연관성을 보장해주는 책은 아니다. 이성은 식물사전에서 파악되지 않은 생명의 흐름을 관조한다.
`"변증법은 오성 규정들의 일면성과 제약성이 본래 그러한 바대로, 다시 말해 그 자신의 부정으로 드러나게 되는 내재적 초탈이다" (E § 81)
2-3) 사변적-긍정적 이성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변증법은 부정적인 결론 속에서 긍정적인 귀결을 포착해낸다. 헤겔은 그것을 사변적- 이성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부른다. 씨앗이 지고 꽃이피고, 꽃이지면서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썩고서야 씨앗이 열린다는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곧 새로운 시작,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사멸하가는 식물들속에서 소생하는 식물을 발견하는 것을 사변적-긍정적 이성은 포착한다. 부정적인 것속에서 긍정적인 것을 확인한다 함은 곧 소멸=생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사변적인 것 또는 긍정적-이성적인 것은 규정들의 통일을 그 대립 속에서 파악하고, 그 규정들의 해체와 이행속에 담겨 있는 긍정적인 것을 파악한다" (E § 82)
"그리하여 지금 다루어진 방향에서의 변증법적인 것에, 다시 말하면 대립물을 통일 속에서, 혹은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 속에서 파악한다는 데에 바로 사변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대논리학 1, 47/L 1, 52)
나무 꽃 과일 씨앗은 서로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첨언하자면 헤겔에게 사변적인 것은 허황된 이야기를 늘여놓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성과 구별되는 이성의 특징, "구별속의 통일"을 의미한다. 정신, 자유, 진리, 인륜성, 자기의식 모두 사변적이다.
주석
(a) "Now we can reduce all acts of the understanding to judgments, and the understanding may therefore be represented as a faculty of judgment... Thought is knowledge by means of concepts. Bur concepts, as predicates of possible judgements , relate to some representation of a not yet determined object. Thus concept of body means something, for instance, metal, which can be known by means of that concept", Kant, Immanuel Critique of Pure Reason B 94
참고문헌
E= Enzyklopa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Werke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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